(전략)

고국을 떠나던 당시 벌어지고 있던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와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나는 영국으로 이주한 초기에야 비로소 반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가했던 위해의 추악함을 곱씹어보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했던 거짓말과 망상을 재고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무수한 잔학 행위에 대해 침묵한, 불완전한 역사였습니다. 우리의 정치는 인종차별적이었고, 그로 인해 혁명에 뒤이어 곧 박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자식들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딸이 어머니 앞에서 폭행을 당했습니다. 영국에 살면서 나는 그런 문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선 그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시간의 결과를 계속해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렀다면 기억의 힘에 저항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건들과 무관한 다른 기억들 때문에도 괴로웠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학대, 사회적 젠더적 도그마로 인해 온전한 표현을 억눌러야 하는 사람들, 가난과 의존을 묵인하는 불평등 같은 것들이요. 이런 문제들은 우리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 존재하지만,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괴로움은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고, 남겨진 자들을 떠나 스스로의 안전을 찾아간 이들이 안고 있는 마음의 짐일 것입니다. 결국 나는, 아직 정돈되거나 체계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있는 혼란과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만들어 이 고통을 완화하고자 내가 반추한 것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일어났던 일이 변형되거나 심지어 생략되었고 그 순간의 진실에 부합하도록 재구성되면서 새로운, 단순화된 역사가 세워졌습니다. 이 새롭고 단순화된 역사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구성할 자유를 가진 승리자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진 적 없고 자신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들어맞는 틀을 통해서만 우리를 보는, 그리고 인종 해방과 진보에 대한 익숙한 이야기를 원하는 논평자나 학자, 심지어는 작가들에게 편리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과거를 증언하는 여러 유형물과 건물과 업적을 무시하고 삶을 가능케 했던 애정을 도외시한 이런 역사를 거부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사물이, 건물이, 사람이 겪은 수모를 보았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가 빠진 사람들이 행여 과거의 기억을 잊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억을 보존하고, 거기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쓰고,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순간들과 이야기들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지배자들이 자축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던 폭력과 잔혹성을 써내야만 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격려가 되고 위안을 준다 한들, 글쓰기란 그저 싸움이나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글쓰기란 어느 특정한 것에 대한 것이나 이런저런 쟁점과 관심사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관심사는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결국 잔혹성과 사랑과 나약함이 그 주제가 됩니다. 나는 또한 글쓰기가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악랄하게 지배하는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명백하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긍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도 매우 진실되게, 그 추함과 미덕이 모두 나타나 인간 존재가 단순화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써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썼을 때 비로소, 어떤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후략**)**

_압둘라자크 구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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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선정 이유

"식민주의의 영향과 대륙 간 문화 간 격차 속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 "